1905년 1월9일 '피의 일요일'은 끔찍한 대학살과 함께 사회주의 나라를 출현하게 한 날입니다.
차르(황제) 니콜라이 2세가 살던 겨울궁전 앞 광장에서 벌어진 비극입니다.
그리고 이 비극으로 한줌도 안되는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가들이 러시아의 국가권력을 빼앗을 수
있었던 계기가 됐습니다.
19세기초 러시아 시민들의 삶
제정 러시아 사회는 이미 산업혁명을 이룬 서유럽 나라들에 비해 경제와 정치가 모두 크게 뒤떨어 져 있었습니다.
19세기 초반 러시아 인구는 삼천만이 조금 넘었습니다.
그중 2천만 명이 넘는 농노들은 '사람이라기 보다는 짐승에 가까운' 비참한삶을 살았습니다.
귀족한테 집과 땅을 받아 농사를 지으면서 돈과 농산물을 바치거나, 귀족 집에 얹혀 살면서 온갖 잡일을하며
평생을 마쳐야 했습니다. 글을 읽거나 쓰는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제정러시아는 바로 이런 농노제도를 바탕으로 한 사회였습니다
차르는 그야말로 하느님과 맞먹는 절대권력을 휘둘렀죠.
귀족들은 차르의 보호를 받으면서 농노들이 피땀 흘려 생산한 것을 빼앗아 먹고 마시며
연애하고 사치를 부리는 데만 정신을 팔았구요.
19세기 나폴레옹전쟁에 참가하여 유럽으로 출정했다가 자유로운 사회를 경험한 젊은 청년 러시아 장교들은
러시아 민중을 전제정치에서 해방시키려는 포부를 가지고 삼천 명쯤되는 반란군을 모아 1825년 12월14일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것이 '데카브리스트당 반란'이었습니다.
이날은 알렉산드르 1세의 뒤를 이어 니콜라이 1세가 새로 황제 자리에 오르는 날이었습니다.
반란군은 변변히 싸워 보지도 못하고 포위공격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굶주림과 추위에 떨다가 총에 맞아 죽거나 붙잡혀 총살을 당했습니다.
즉위 첫날부터 반란을 겪은 니콜라이 1세는 황제 자리를 지킨 30년 동안 자유주의 사상을 무지막지하게 탄압합니다.
니콜라이1세 다음으로 알렉산드르 2세가 황제 자리를 물려받았습니다.
그는 제법 현명한 사람이어서 정치제도를 개혁하고 산업을 발전시킵니다.
1861년 농노제도를 폐지하고, 3년 뒤에는 지방자치의회인 '젬스트보'를 설치합니다.
또 재판제도를 손질하고, 귀족이든 평민이든 모두 군복무를 하도록 징병제도를 뜯어고쳤습니다.
알렉산드르 2세의 개혁정치는 1881년에 갑자기 멈추어 버립니다.
어떤 테러리스트가 폭탄을 던져 '해방자황제'를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뒤를 이는 알렉산드르3세와 니콜라이2세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립니다.
막 싹튼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금지하고 자유주의 지식인들을 박해했습니다.
19세기후반 세 갈래 정치세력
'나로드니키'와 '마르크스주의자'와 '온건한 개혁주의자'들입니다.
이중 가장 두드러지게 일을 벌인것은 나로드니키였는데요.
혁명가 '바쿠닌'의 가르침에따라 청년들은 농민들에게 모든 사회악이 사유재산제도 때문이라고 가르치고
그것을 폐지하기 위해 싸우자고 선동했지만 농민들은 거꾸로 재산을 늘리는 것이 꿈이었기때문에 혁명투쟁에 나서기는 커녕 돌팔매로 나로드니키를 쫒아 버리거나 붙잡아서 경찰관에게 넘겨 주었습니다.
'농민의 혁명 에너지'에 불을 붙이는 데 실패한 나로드니키는 도시에 들어와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폭력과 테러로 차르 체제를 뒤집어없는 쪽으로 방법을 바꿉니다. 마침내는 알렉산드르2세까지도 암살하고 나중에 '사회혁명당'을 만듭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별 힘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마르크스가 쓴 책을읽고 그 사상을 공장 노동자에게 전파하고 그들을 조직했습니다. 그들은 노동자가 아닌 농민을 혁명 주체로 삼은 나로드니키를 비판했는데요.
차르 경찰입장에서는 골칫덩어리 테러 과격분자들을 공격하는 마르크스주의자를 반갑게 맞아 주었고 마르크스주의를 담은 책이 마구 돌아다녀도 눈감아 주었습니다.
그들은 1898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을 만들었는데 경찰이 손을대자 대부분의 핵심인물들은 다 해외로 도망갑니다.
또 하나의 정치세력은 온건 개혁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전제정치를 입헌군주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고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그나마 제대로 아는 자본가와 일부 귀족들이 여기에 참여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귀족과 지주들은 여전히 전제정치를 칭송했습니다.
이 세 갈래 정치세력 가운데 어느 편도 민중의 마음을 얻지 못했습니다. 러시아 민중은 아직 '아버지 차르'를 쫒아내
버릴 준비가 안된것이죠. 그런데 바로 이런 상황에서 '피의 일요일'사건이 터진 것입니다.
1905년 '피의일요일'
이날 겨울궁전 앞에는 20만 명이 넘는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여자와 노인은 물론이요. 어린아이들까지 섞여 있었습니다. 무기라고는 아무 것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황제의 초상화를 들고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하느님이시여, 차르를 구하소서!" 그들은 너무 가난하고 굶주린 나머지 '자비로운 아버지 차르'에게 고통을 호소하고 자비를 구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러시아 정교회 신부인 '가퐁'이 맨 앞에서 노동자들을 이끌었습니다.
가퐁신부는 페테르부르크 노동자들의 호소를 듣고 '아버지 차르'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대열을 이끌었습니다.
길을 가던 구경꾼들도 황제의 초상을 보고 가슴에 십자를 그었습니다.
경찰은 교통정리를 해서 이 평화로운 행진을 도와 주었습니다. 그러나 겨울궁전 앞 광장에서 그들을 맞아준 것은 자비로운 차르가 아니라 바리케이드를 치고 총울 겨눈 군대였습니다. 노동자들은 행진을 그만두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뒷 대열에 밀려 물러날 곳이 없었고 그래서 자꾸만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러자 총소리가 광장을 뒤덮었습니다.
하얗게 언 눈 위로 노동자들의 붉은 피가 흘렀습니다. 대열은 순식간에 무너져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텅 빈 광장에는 수없이 많은 시체가 뒹굴었습니다. 소식을 듣고 분개한 학생들도 몰려왔습니다.
겨울궁전안에는 무장한 군인들이 2만명이나 진을 치고 있어고 군중은 군대와 경찰을 향해
욕을 하고 야유를 퍼부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날 5백명이 넘게 죽고 수천 명이 다쳤습니다.
물론 확실한 통계는 나와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피의 일요일'이라는 이름이 결코 지나치지 않을 만큼
많은 피가 흐른 것만은 분명합니다
차르에대한 동화같은 환상에서 깨어난 러시아 민중은 황제의 충성스러운 신민이기를 그만두고
혁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수많은 혁망가들이 대중앞에 나타나고 페테르부르크 거리 곳곳에 혁명가들과 대중들은 무기를 들고
차르 군대와 맞섰습니다.
이러한 혁명의 불꽃은 얼어붙은 땅을 녹이며 들불처럼 번져 나갑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니콜라이2세는 입헌군주제 헌법을 제정하여 국민이 뽑은 대표로 의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받았는데 이른 '10월 선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말로한 약속일 분 니콜라이2세는 이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혁명가들이 싸우는동안 해외로 도망간 가퐁은 한 번도 혁명을 꿈꾸지 않았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혁명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왕 내친김에 그는 레닌을 비롯한 망명혁명가들을 만나 무장봉기를 일으켜 차르 체제를
타도해야 한다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가퐁도 무기를 사가지고 러시아로 들어가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고 한동안 숨어 지내다 다시 경찰과 손을 잡았습니다.
그러자 1906년 4월 테러 전문업자인 사회혁명당(나로드느키) 당원들이 이 '배신자'를 붙잡아 어느 시골집 서까래에 목을 매달아 버립니다.
니콜라이2세또한 1905년 혁명이후 한참 시간이 지난후 1918년7월16일 새벽 2시, 볼셰비키 요원들이 취침 중인 니콜라이2세와 황후,황녀,황태자등 가족들을 모두 행장을 갖추고 지하실로 데려가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로마노프 씨. 반혁명 세력들이 당신을 구하려했으나 실패했소, 그러나 우랄 노동자 소비에트는 당신 일가에 사형을 선고했소"라고 통보하며 바로 총을 꺼내고 난사했습니다.
가퐁신부가 한 예언은 시간이 많이 흐른후에 실현되었습니다.
그는 "흘러야 할 그 모든 피가, 살인자여, 그대와 그대의 가족에게 흘러 떨어지리라"라고 예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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