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정권을 잡은 히틀러는 자신의 승용차 운전기사에게
"이봐, 나는 살아서 이 관저를 나가지 않을 것이네"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그는 1945년 4월30일 2차세계대전에서 패전이 임박했을때 권총으로 스스로 자살했습니다.
실제 그의 예언이 맞긴했지만 그당시엔 권력에대한 그의 확고한 의지를 내비친 것일겁니다.
학창시절의 히틀러
히틀러는 1889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납니다.
세관 관리였던 아버지 '알로이스 히틀러'는 두번이나 아내와 사별하고 24살이나 어린
'클라라'와 결혼해서 두 아들을 낳았는데 그 중 맏아들이 아돌프 히틀러 였습니다.
초등학교시절 히틀러는 공부를 잘하고 그림도 잘그렸지만 아버지의 요구로
고등학교때 실업학교로 진학후 삐딱선을 타기 시작합니다.
1907년 빈의 미술대학에 응시하지만 떨어지는 좌절을 겪습니다.
이시기는 자본주의 열강들이 식민지 쟁탈을 위해 서로 암투를 벌이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그는 빈에서 어둡고 가난한 하층민들의 삶을보면 그들을 동정하기보단
이러한 하층민들을 증오합니다. 증오하며 느낀점은 바로 '대중조작'기술입니다.
"대중은 이해력이 부족하고 잘 잊어버린다" "대중은 지배자를 기다릴 뿐, 자유를 주어도 어찌할 바를 모른다"는
식의 대중관을 가집니다.
히틀러는 하층민을 자각시키기 보다는 하층민의 가장 타락하고
낙후한 면을 잘 포착하여 그들의 심리를 조작하는 기술을 익혀 나갔습니다.
독일로 넘어간 히틀러
이렇게 약자를 멸시하고 강자를 동경하게된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에서 독일로 넘어가
제1차 세계대전에 스스로 지원해 참전합니다.
그림을 팔아 살아가는 생활에서 탈출하고 지원병으로 입대해 독일제국의 병기가 된 것입니다.
그는 예술가보다 명령과 복종이 지배하는 병영에서 오히려 안식처를 찾았습니다.
그는 전우애야말로 "가장 고귀하고 거룩한 인간정신"이라고 확신합니다.
즉, 규율과 명령,복종의 조직원리가 이상적인 사회관계로 생각하고 실제 나중에 국가 자체를
이같은 원리에 따라 조직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달리 독일은 패전하고 1918년 독일제정에서 공화국이 수립니다.
이것이 '바이마르 공화국'입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무능했고 패전 후에 군복을 벗고 도시로 쏟아져 나온 수많은 젊은이들과
제대군인들은 실업자가 되어 거리를 떠돌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독점자본가와 지주, 관료, 군부 우익들은 반동의 칼날을 갈고
1919년1월 '독일노동자당'이라는 우익단체를 결성합니다.
1920년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National-soZialist)로 당명을 변경하고
앞뒤의 Na와 zi를 따서 Nazi(나치)라고 합니다.
평소 뛰어난 웅변술을 인정받던 히틀러 상등병은 나치에 파견되어 금방 이름난 연사가됩니다.
히틀러는 흔히 보는 다른 유명 인사들처럼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어 내려가지않고 청중들의
반응을 보면서 자유자재로 선동적인 연설을 합니다.
시대착오적인 왕당파, 반동적인 군부, 노동운동을 목졸라 때리고 싶은 독점자본가들이
히틀러의 연설에 매료됩니다.
이러한 가운데 나치당원은 5만을 넘고 나치돌격대도 그 수가 많이 늘어났습니다.
'맥주홀폭동'실패로 감옥에가다
물론 히틀러도 나치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구요.
드디어 1923년11월8일 히틀러와 바이에른 극우파는 뮌헨의 맥주홀에서 돌격대를 이끌고
폭동을 일으킵니다. 이른바 '맥주홀 폭동'입니다. 그러나 이폭동은 군부의 반대로 실패하고
제1차 세계대전의 영웅 '루덴도르프'와 함께 체포됩니다.
루덴도르프는 정상참작이되서 무죄로 풀려나고 히틀러만 5년형을 선고받아 란츠베르크의
감옥에 수감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히틀러는 감옥에 수감되면서 대중에게 더 인기가 많아졌습니다.
쿠테타를 일으킨 죄인임에도 히틀러의 연설에 감명받은 재판부의 도움으로
그는 수감 1년후 1924년11월 석방되어 1925년 2월 그 다음해에 당을 재건합니다.
국민들의 투표로 권력을잡은 히틀러
그리고 친위대(SS)라는 비밀조직을 당내에 만들었습니다.
나치당은 폭동으로 왕당파와 군부의 후원을 잃었지만 합법 대중정당으로 변신하고
히틀러는 대중 정치인으로 성장해 권력을 결국 획득합니다.
1929년의 미국대공황으로 독일은 미국 자본의 뒷받침을 상실하자 독일 경제는 송두리째 흔들립니다.
임금 인하와 실업에 분노한 노동자계급은 종전후 줄곧 집권하거나 우익과 연립하여 정부에 참여해왔던
사회민주당을 외면하고 공산당 진영으로 속속 전향했습니다.
나치당은은 주춤하고 공산당 세력은 계속 확대됐습니다.
하지만 사회주의 혁명에 공포를 느낀 대자본가,지주계급,왕당파 보수주의자들은 나치의 깃발아래
황급히 모여들었습니다. 히틀러는 보수진영의 모든 정파와 손잡고 1933년1월 드디어 내각을 장악하고
독일의 총리로 임명됩니다.
여전히 정세는 불투명했습니다. 공산당과 노동자계급은 고난을 안겨준 자본주의체제를 타파하고
러시와혁명의 뒤를 따를것을 요구했고 나치를 필두로 한 진영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드는
민주주의를 폐지하고 독재정부를 수립하자고 외쳤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1933년3월5일 총선거를 며칠 앞두고 나치는 국회의사당에 불을 지른 다음
이를 좌익의 소행으로 조작했습니다.
일반 국민들 사이에는 사회불안에대한 공포와 반공 분위기가 번져 나갔습니다.
이런 조작의결과 나치당은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히틀러는 가장먼저 6백만 지지자와 36만 당원을 가진 공산당을 폭력으로 해산시켰습니다.
다음으로 사회민주당 조직 또한 해체시키고 노동조합운동을 전면 금지시킵니다.
나치는 강력한 조국의건설이라는 명분으로 각계각층을 철저히 하향식으로 조직합니다.
돌격대,친위대,나치 자동차 운전사단, 히틀러 유겐트, 나치 여성단등이 모든 계급 계층이
나치당과 그 보조조직으로 전락했습니다.
사회 전체가 총통 히틀러를 정점으로 한 군사조직으로 바뀐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
이러한 히틀러에대한 복종은 '위대한 게르만 민족의 세계지배'라는 광적인 신념으로 변질됩니다.
나치는 국제적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재무장을 갖춘 다음 1936년 라인란트를
침공함으로써 1차대전 패전후 조인한 배르사유조약을 파기했습니다.
곧이어 1938년 3월에 오스트리아를 합병했고 1939년 8월에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하자마자
9월1일에 폴란드를 침공했습니다.
참을 수 없게 된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마침내 두 번째 세계전쟁이 터졌습니다.
게르만족이 청동기시대부터 행운의 상징으로 사용해 온 하켄크로이츠(갈고랑이 십자가)는 이제 재앙과
살육의 상징이 됐습니다.
히틀러 친위대와 관료기구 꼭대기는 인종이론 광신자로 가득 차 드디어 유태인 절멸정책을 실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동유럽 각지의 유태인 노인과 환자, 부녀자와 어린이들은 수용소에 도착하는 즉시 살해됐습니다.
건강한 사람들은 노동력이 완전히 고갈될 때까지 강제노동을 한 다음 가스실로 끌려갔습니다.
또한 독일군은 유태인들을 상대로 갖가지 생체 실험을 했습니다.
공기가 없는 곳에서 얼마나 견디는가? 영하 몇 도에서 인간은 죽는가?등등입니다.
이 전쟁에서 민간인 3천만 명이 폭격과 집단학살로 생명을 잃었고 1천 6백만명의 군인이 전사했습니다.
초기에 승승장구하던 독일은 시간이 지날수록 육.해.공군 모두 열세에 빠졌으며, 1945년 5월7일 항복을 선언합니다.
히틀러의 최후
전쟁범죄자 히틀러는 그간 동거해 왔던 에바브라운과 4월29일 새벽에 황급히 결혼식을 올렸고
다음 날 오후 동반자살로 생을 끝마쳤습니다. 에바는 독약을 마셨고 히틀러는 권총으로 자기 머리를 쏜것입니다.
나치즘은 약소국을 침략하고 민주주의를 말살한 제국주의의 본질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민중의 정치의식이 높았던 미국과 영국은 국가권력이 개입하여 자본주의체제를 어느정도
수정함으로써 어느정도의 민주주의를 유지했지만 그렇지 못한 독일,이탈리아,일본 등의
지배계급은 3권 분립과 자유선거,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와 정당정치를 모조리 폐기하고
강력한 독재체제를 수립한 것입니다.
이것이 '파시즘'이며 나치즘은 파시즘의 극단적 형태를 보여준것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엄존하는 제3세계 파쇼체제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나 배후조종등을 보면
나치독일이 인류에게 남긴 교훈은 완전 끝나 버린 과거에만 국한되지 않다는것이 슬픈현실입니다.
나치범죄를 두고두고 우리는 살펴보고 교훈으로 삼아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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