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4년, 산시성 문수현에서 '무조'라는 이름의 소녀가 태어났습니다.
훗날 그녀는 중국 5천년 역사상 유일한 여황제, 측천무후로 기록됩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당나라를 세운 이연(당 고조)과의 인연으로 부유한 집안에서 성장한 무조는 역사·문학·승마 등 다방면의 교육을 받았고 총명했습니다.
그러나 12살에 아버지를 잃고 전처 자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힘이 없으면 짓밟힌다”는 진리를 체득합니다.
14세에 당 태종의 후궁으로 입궁했으나, 미모에도 불구하고 총애를 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정치술을 배우고 강렬한 야망을 키워갔죠.
특히 태종의 아들 **이치(훗날 고종)**와 가까워지며 운명의 길이 열립니다.
권력의 길로 들어선 무조
태종 사후, 후궁들은 절로 들어가야 했으나
고종이 사랑하는 '소숙비'를 질투한 '왕화후'는 무조를 다시 궁에 들어오게 합니다.
왜냐면 무조와 소숙비를 서로 싸우게 만들려고 했던겁니다.
황후 왕씨와 소숙비의 대립 속에 무조는 교묘히 신뢰를 얻었고,
결국 왕 황후와 소숙비를 동시에 몰락시킨 무조는 드디어 황후 자리에 오릅니다(655년).
이 과정에서 그녀의 냉정함은 극에 달합니다.
자신의 딸을 희생해 왕 황후에게 누명을 씌우는 등 권력을 위해서라면 무엇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황후가 된 뒤 무조는 고종을 철저히 장악했습니다. 우유부단한 고종은 점점 그녀에게 의지했고, 무조는 권력을 확대하며 반대파 대신들을 제거해 나갔습니다.
실권 장악과 공포정치
고종의 건강이 악화되자 사실상 국정을 무조가 주도했습니다.
반대파 숙청과 무자상(밀고 상자)을 통한 공포정치는 백성과 관료들을 떨게 만들었죠.
그러나 동시에 부패한 세력을 정리하며 정치적 안정도 가져왔습니다.
경제와 문화도 크게 발전했습니다. 농업 정책을 강화하고, 실크로드를 장악해 국제 교류를 활발히 했으며, 불교를 이용해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했습니다.
낙양의 '용문석굴' 이 대표적 유산입니다.
황제에 오른 여인
690년, 67세의 나이로 마침내 황제로 즉위해 국호를 ‘주(周)’로 바꿨습니다.
여자자 황제가 된다는건 중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이었습니다.
즉위 과정은 잔혹했지만 그녀는 과거제를 통한 능력 중심 인재 등용을 추진했고, 나라를 번영기로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사생활에서는 ‘남총’이라 불린 미모의 남자들을 곁에 두며 젊음을 유지하려 했다는 풍문도 전해집니다.
705년, 8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측천무후. 잔혹한 권력욕의 화신이자 동시에 유일한 여황제로서 나라를 안정시키고 문화를 꽃피운 인물로 기억됩니다.
그녀가 냉혈한 권력자가 아니었다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측천무후의 삶은 지금도 권력과 정치, 그리고 여성의 위치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져줍니다.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00년대초, 나라를 빼앗긴 조선과 세계사의 흐름 (8) | 2025.09.01 |
---|---|
망국(2) 1910년 8월29일 대한제국 결국 일본에게 강제합병 (6) | 2025.08.14 |
역사상 가장 무의미했던 전쟁 TOP6 (1) | 2025.07.24 |
쫄딱 망한 '정부정책 TOP 6' (4) | 2025.07.16 |
(망국1) 열강이 몰려온 조선, 그리고 잃어버린 10년 (5) | 2025.06.0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