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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1900년대초, 나라를 빼앗긴 조선과 세계사의 흐름

by 언빈 2025.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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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조선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는 단순히 우리 민족만의 비극이 아니었습니다.

세계는 제국주의, 전쟁, 혁명이라는 격랑 속에 흔들리고 있었죠.

백성을 곤궁함에서 구하기 위하여 한국의 통치권을 믿고 의지하던 대일본 황제 폐하께 잉여 한다'는 순종황제 칙유, 1910년 8월 29일 [출처] 한일병합조약 체결, 대한제국 멸망의 날

 


📌 1. 1910년, 한일병합과 제국주의 열풍

경복궁 근정전 앞, 광화문 뒤쪽(현 광화문 광장 뒤에 위치)

● 조선이 일본에 병합된 1910년은 제국주의 절정기였습니다.

● 영국은 인도를, 프랑스는 베트남을,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를 지배.

● 일본 역시 이 흐름에 올라타 조선을 집어삼켰습니다.

👉 조선의 병합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제국주의 경쟁의 일부였던 셈이죠.


📌 2. 의병의 몰락과 세계의 무기 경쟁

 ● 조선이 일본에 병합된 1910년은 제국주의 절정기였습니다.

 조선의 의병들은 총과 칼로 싸웠지만, 일본군은 기관총과 신식 무기를 사용했습니다.

 이미 세계는 산업혁명 이후 무기 경쟁 시대.

 곧 다가올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에서 사용된 무기들이 조선에서도 그대로 쓰였습니다.

👉 결국, 의병들의 전투는 불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3. 안중근 의사와 아시아의 반제국주의

 ● 조선이 일본에 병합된 1910년은 제국주의 절정기였습니다.

 ● 1909년,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습니다.

1910년경 하얼빈역 전경

 

   러일전쟁(1904~1905) 이후 일본은 아시아 최초로 서양 열강을 꺾은 나라가 되었고, 이는 “백인도 이길 수 있다”는희망을 퍼뜨렸습니다.

   안중근 의거는 이 흐름의 연장선으로, 중국·러시아·인도 지식인들까지 그를 아시아 반제국주의의 상징으로 칭송했습니다.


📌 4. 해외 망명 운동과 세계 혁명 열풍

   독립운동가들은 만주, 연해주, 미국 등지로 망명했습니다.

   같은 시기 세계 곳곳에서 혁명 바람이 불었습니다.

   1911년 중국 신해혁명 : 청나라 멸망,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 등장

   1917년 러시아 혁명 : 제정 러시아 붕괴

   이런 사건들은 조선 독립운동가들에게 큰 자극이 되어,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군 기지가 힘을 얻게 됩니다.

중국 지린성위치
지린성 신흥무관학교 1차추정지 <출처:독립기념관>


📌 5. 친일파와 독립운동가의 선택

   조선 내부에서는 이완용, 송병준 같은 친일파 매국노들이 있었고,

1926년 62세의 나이로 자연사<출처:위키백과>
1925년2월1일 친일 실업거두 한상룡이 주최한 연회에 참석한 뒤 갑자기 사망<출처:위키백과>

 

  반대로 이회영 형제는 거대한 가산을 버리고 만주로 가 독립군을 양성했습니다.
👉 이는 단순히 조선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식민지 권력에 빌붙을 것인가, 맞설 것인가”**라는 세계적 공통 과제였습니다.

1932년 11월, 고문 후유증으로 옥사(獄死) <출처:이회영기념관>

📌 6. 백성들의 삶과 세계 민족주의

   백성들은 땅을 빼앗기고 가난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몰래 한글을 가르치며 민족의 불씨를 지켰습니다.

   유럽에서도 체코, 폴란드 같은 약소민족들이 독립을 꿈꾸었고,
그 소식은 신문을 통해 조선 지식인들에게 전해졌습니다.


📌 7. 제1차 세계대전과 조선의 희망

   1914~1918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전쟁이 끝난 뒤,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민족 자결주의’**를 선언합니다.

1차 세계대전 연합국 정상들이 파리 강화회의에 모인모습. 왼쪽부터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영국 총리, 비토리오 오를란도 이탈리아 총리, 조르주 클레망소 프랑스 총리,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 /출처:위키피디아

   “모든 민족은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이 사상은 조선 지식인들에게 큰 희망이 되었습니다.
👉 이 불씨는 1919년, 거대한 독립 만세 운동으로 터져 나오죠. 3·1운동입니다.

1919년 3.1운동 당시 대한문(지금의 덕수궁 정문) 앞의 만세시위 모습. /출처=독립기념관

1910년대 조선은 절망 속에서도 세계의 변화를 바라보며 희망을 키워갔습니다.
러일전쟁, 신해혁명, 러시아 혁명, 제1차 세계대전…
거대한 세계사의 파도가 조선인들에게도 새로운 길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고립된 민족이 아니었습니다.
세계의 흐름 속에서 함께 꿈꾸고, 함께 저항한 민족이었습니다.

 

👉 다음 글에서는, 1919년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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