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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망국(2) 1910년 8월29일 대한제국 결국 일본에게 강제합병

by 언빈 2025.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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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대한제국의 비극 — 무단통치와 조선총독부의 탄생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은 일본에 의해 강제로 병합되며 조선총독부의 무단통치가 시작되었습니다. 데라우치 마사타케와 아카시 모토지로, 그리고 태형령까지… 식민지 조선의 공포정치를 알아봅니다.


1. 대한제국의 종말과 이왕가로의 격하

년도별 일본제국주의 통치구역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은 일본에 강제로 병합되었습니다.
황실은 이왕가로 격하되었고, 조선 통치는 일본이 설치한 조선총독부가 맡게 됩니다.

 


2. 일본 제국주의의 사상적 뿌리 — 요시다 쇼인

일찍이 조슈번의 사상가 요시다 쇼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 오랑캐(조선과 중국)를 휘어잡고, 만주를 굴복시키고, 인도를 넘보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루지 못한 것을 완수해야 한다.”

그의 제자들이 바로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이노우에 가오루입니다.

(1830~1859 /<출처:위키백과)


3.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

데라우치 마사타케(1852~1919)<출처:위키백과>

  • 세이난 전쟁에서 부상을 입고 오른팔을 잃음
  • 군사행정가로 전환 후 일본 정부의 신임을 받음
  • 대륙 진출론자이자 힘에 의한 통치를 신봉
  • 조선에 부임하자 무단통치를 본격화

4. 헌병사령관 '아카시 모토지로'의 등장

아카시 모토지로(1864~1919)<출처:나무위키>

아카시는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에서 스파이로 활동하며 100만 엔의 공작금을 요구해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 돈으로 레닌가폰 신부를 접촉, 러시아 혁명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고, 그 공로로 이토히로부미는 ‘혼자서 10개 사단의 역할을 해낸 인물’로 불렀습니다.


5. 조선에서의 헌병 정치

1910년 말, 헌병 수는 2만 명까지 증가했습니다.
주요 임무는 의병 토벌, 주요 인사 성향 파악, 체포와 고문이었고, 인력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조선인을 헌병 보조원으로 모집하기도 했습니다.


6. 태형령 — 조선만의 잔혹 제도

1912년 제정된 조선태형령은 일본 본토에 없는 법이었습니다.

  • 대상: 도박, 주정, 길거리 싸움, 부역 태만 등
  • 집행자: 경찰서장, 헌병분대장
  • 태형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빈번
    이로 인해 태형은 조선 무단통치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7. 무단통치의 상징, 제복과 칼

헌병과 경찰은 물론, 공무원과 교사까지도 제복에 칼을 찬 채 근무했습니다.
학교 수업에서도 교사가 칼을 차고 등장하는 모습은 조선인들에게 공포를 주었습니다.


조선총독부의 통치는 곧 공포정치였습니다.
군사력과 법, 제복, 그리고 태형이 억압의 수단으로 사용되었고, 35년간 조선은 철저한 식민지로 전락했습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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