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3일 대한민국에서 정신병자 한명때문에 친위쿠테타가 일어났는데요.
이때 스페인 기자도 취재하러 많이 왔다고 합니다.
왜냐면 스페인에서도 이와 비슷한 내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게 바로 1981년 2월23일에 일어난 23f라는 쿠테타입니다.
여기서 f는 february(2월)의 약자입니다.
스페인 언론이 한국의 12.3쿠테타가 스페인의 23f와 너무 똑같다라고 보도를 냈는데요.
스페인은 1981년이지만 한국은 2024년도에 쿠테타라니...이게 뭡니까??
23f 쿠테타가 일어나게된 배경
스페인은 1898년 미국과 전쟁에서 대패를 하게되는데요.
그러면서 완전 종이호랑이로 전락을 해버립니다.
모든 식민지를 잃어버리게되죠
독재자 프랑코
해외 파병이됐던 스페인 군인들도 실직을하게되고 본국으로 돌아옵니다.
이때를 이용해 프랑코라는 장군은 실직한군인들에게 이 모든 잘못이 군부가 잘못한게 아니라 썩어빠진
정치인들 때문이라며 선동을 합니다.
또한 그때가 소련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한 다음에 공산주의 사상도 스페인에 들어온 상태라서
저 빨갱이들 때문에 스페인이 이 꼴 난거라거 선동을했고 이것이 먹힙니다.
이렇게해서 쿠테타 성공후 프랑코는 무려 40년동안 철권독재통치를 합니다.
군부가 정권을 잡자 스페인은 무적함대를 이끌던 강국에서 완전 망해버립니다.
오죽했으면 북한이 "우리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도 노력하면 스페인처럼될수 있다"고 말할 정도죠
경제는 개판이고 프랑코는 아침에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면 오늘 처형할 사람들 명단부터 챙겼는데요.
처형시킨 다음에 대대적으로 언론에 이들은 빨갱이라고 홍보를 했습니다.
프랑코의 후계자 '후안카를로스'
40년동안 철권통치를 하면서 나름 천수를 누리고 1975년에 죽는데 후계자로 스페인 국왕의 손자였던
'후안 카를로스'를 후계자로 앉혔는데 그 이유는 카를로스가 납작엎드리고 프랑코의 말을 잘 들었기 때문이죠.
프랑코는 죽으면서 마지막 유언으로 "나의 정적들이여 나를 용서하라"는 어처구니 없는 유언을 했다고 하네요.
완전 소시오패스인거죠.
후안 카를로스의 개혁
프랑코가 죽자 후안카를로스는 숨겨논 발톱을 꺼네며 모든걸 다 뒤집어 버립니다.
프랑코 정권의 하수인들, 부역인들을 다 잡아들이고
자기 스스로 정권을 내려놓으며 왕좌를 내려 놓으며 입헌군주제를 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아레스를 총리로 군에서 잔뼈가 굵었던 메야도 육군 중장출신 예비역을 부총리로 임명합니다.
메야도부총리는 쭉 군에서 있었기때문에 누가 극우우파 인지 군의 상황을 너무나도 잘 알았던거죠.
수아레스 총리와 메야도 부총리는 군 민주화를 단호하게 실시합니다.
또한 정당한 합법 틀에서 공산당과 사회당도 합법화 시킵니다.
아직 잔재한 군부세력의 축 '테헤로 중령'의 쿠테타
이에 프랑코 정권 밑에서 권력을 누렸던 나머지 세력들이 최후의 발악을 하는데
1977년 프랑코가 죽고 2년후 테헤로 헌병 중령이라는 작자가 쿠테타를 추진해 의회를 해산하려고
하는데 근데 모의 단계에서 걸립니다.
11개월의 징역살이를하고 풀려나는데 어이없게도 다시 중령으로 복귀를 합니다.
아마도 군의 입김이 아직까진 쎘던거 같습니다.
뿌리를 완전히 잘라버려야했는데...
역시나 테헤로 헌병중령은 이번에 보슈 기갑부대 중장과 같이 쿠테타를 추진합니다.
이날이 1981년 2월23일(23f)이었고 이날은 부총리 임명 동의안을 처리하는 날이기 때문에
350명의 모든 국회의원들이 모여있었습니다.
이때 국회의원들을 싹다 잡아들이려 했던거죠.
국회 본회의가 열렸기때문에 모든게 생중계로 진행되고 있었고
이 광경을 모든 국민들이 보았습니다.
테헤로 헌병대 육군 중령이 200명의 헌병을 끌고 생방송을 하고 있는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에 들어오고
천장으로 총기를 난사합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눈하나 꼼짝 안하고 이 상황을 본사람이 있으니 그 두사람이 수아레스 총리와 메야도 부총리입니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메야도 부총리인데 테헤로는 메야도 부총리의 머리를 개머리판으로 치며 하극상을 벌였다네요.
그럼에도 메야도는 "나는 너희들의 선배다 이 새끼들아 뭐하는 짓이냐"라며 기세 등등했다고 하네요.
이 소식을 카르로스 국왕은 마드리드 방송국에 전화를 합니다.
그러나 방송국도 쿠테타측에 접수가 된 상태였는데요.
그래서 어쩔수 없이 모든 군대 전화를 겁니다.
하지만 군대들도 애매모호한 스탠스를 취하는 위기상황에서 결정적으로 마드리드 수도를 방어하는 우리로치면
수방사가 카를로스국왕을 구하기위해 출동합니다.
먼저 방송국으로 가서 카메라맨을 대동하고 왕궁으로 옵니다.
그리고 저녁11시에 왕궁에서 녹화를합니다.
"국민여러분 이 쿠테타는 불법입니다. 절대 따르지 마십시오. 그리고 쿠테타 세력도 끝까지 밀 생각이면 나를 죽여라"라고 말합니다.
이 녹화본을 마드리드 방송국으로 다시 가져가서 새벽 1시에 송출을 합니다.
그러자 보슈중장이 실패를 직감하고 테헤로중령을 설득합니다.
목숨이라도 구하자며 국왕과 협상을 시도합니다.
국왕은 국회봉쇄부터 풀어라 그러면 대신 헌병 사병들은 용서해주기로 합니다.
그래서 이쿠테타는 7시간만에 실패로 돌아갑니다.
내란 세력들을 철저하게 응징안하면 생기는일
이 쿠테타실패로 테헤로 중령은 징역 30년을 보슈중장은 20년형 을 받습니다.
너무 싸게 끊었습니다. 사형을 시켰어야되는데 말이죠.
이때문일 까요? 23f 쿠테타 이후에 82년 85년, 97년 숨어있던 보슈 잔당파들이 또 다시 쿠테타를 일으킵니다.
스페인은 쿠테타가 정말 자주 일어나는데요.
그래서 내란세력들은 한 번 척결할때 대대적으로 완전 중형으로 다스려야 이런 쿠테타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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