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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일요일(1905년혁명) / 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에서 벌어진 대학살 1905년 1월9일 '피의 일요일'은 끔찍한 대학살과 함께 사회주의 나라를 출현하게 한 날입니다.차르(황제) 니콜라이 2세가 살던 겨울궁전 앞 광장에서 벌어진 비극입니다.그리고 이 비극으로 한줌도 안되는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가들이 러시아의 국가권력을 빼앗을 수있었던 계기가 됐습니다.  19세기초 러시아 시민들의 삶제정 러시아 사회는 이미 산업혁명을 이룬 서유럽 나라들에 비해 경제와 정치가 모두 크게 뒤떨어 져 있었습니다.19세기 초반 러시아 인구는 삼천만이 조금 넘었습니다.그중 2천만 명이 넘는 농노들은  '사람이라기 보다는 짐승에 가까운' 비참한삶을 살았습니다.귀족한테 집과 땅을 받아 농사를 지으면서 돈과 농산물을 바치거나, 귀족 집에 얹혀 살면서 온갖 잡일을하며평생을 마쳐야 했습니다. 글을 읽거나 쓰.. 2024. 10. 27.
골리앗을 이긴 다윗 '베트남전쟁' 베트남 전쟁당시 베트남은 라오스, 캄보디아와 접하고, 북으로는 중국의 운남성,광서성과 이웃하는 인구 3천만밖에 안되는 작은 나라였습니다. 그런데도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 기나긴 싸움을 벌인 끝에 승리를 거두었습니다.성조기를 들고 참가한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것은 이 전쟁이 최초입니다.남북으로 분단된 베트남1945년 베트남에서 일본제국이 물러나자 '호치민'이 이끄는 베트민(월맹)이 베트남 북부를 장악하여 베트남 민주 공화국(북베트남) 을 세웠습니다.남부에는 프랑스가 '베트남국'이라는 대리 정권을 세워 베트남 북부를 장악하려 애썼으나 결국 실패하고 제네바 협정을 맺음으로써 남베트남(베트남국)은 독립했습니다. 제네바협정으로인해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분단되었습니다. 프랑스가 철수한후 일본과 프랑스의 꼭두각시였.. 2024. 10. 20.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맨날 싸우는 이유(핵심요약) '뮌헨' 이란 영화에서 보셨듯이 1972년 8월26일  제20회 올림픽이 서독의 뮌헨에서 화려하게 열렸습니다.하지만 9월5일 검은 복면으로 감싼 무장 게릴라에의해 이스라엘 선수 둘이 사살되고 아홉명이인질로 잡혔습니다. 이 광경을 세계 각국의 국민들이 tv를 통해 생생히 봤는데요.이 게릴라는 '검은 9월단'이라는 가장 과격한 팔레스타인 게릴라 조직입니다. 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원수지간이 됐을까요?이스라엘 극우 '시온주의'의 등장이스라엘의 건국과정부터 알아야되는데요.이스라엘 건국을 가져온 것은 시온주의입니다.공교롭게도  이 시온주의는 프랑스를 대혼란으로 몰아넣은 1896년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드레퓌스를 비난하는 프랑스군중의 반유태주의 폭동에 놀라《유태국가 》라는 책을 집필한'헤르즐'이라는 .. 2024. 10. 14.
아돌프 히틀러 생애(핵심요약) 1933년 정권을 잡은 히틀러는 자신의 승용차 운전기사에게 "이봐, 나는 살아서 이 관저를 나가지 않을 것이네"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그는 1945년 4월30일 2차세계대전에서 패전이 임박했을때 권총으로 스스로 자살했습니다. 실제 그의 예언이 맞긴했지만 그당시엔 권력에대한 그의 확고한 의지를 내비친 것일겁니다.학창시절의 히틀러히틀러는 1889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납니다. 세관 관리였던 아버지 '알로이스 히틀러'는 두번이나 아내와 사별하고 24살이나 어린 '클라라'와 결혼해서 두 아들을 낳았는데 그 중 맏아들이 아돌프 히틀러 였습니다.초등학교시절 히틀러는 공부를 잘하고 그림도 잘그렸지만 아버지의 요구로 고등학교때 실업학교로 진학후 삐딱선을 타기 시작합니다. 1907년 빈의 미술대학에 응시하지만 떨어지는 좌.. 2024. 10. 7.